대통령지정기록물, 법원 심사를 거부할 수 있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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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통령이 퇴임 전 특정 기록물에 보호기간을 설정한 행위가 적법한지를 법원이 심사할 때, 행정청은 대통령기록물법을 근거로 해당 기록물의 제출을 거부할 수 없다는 것이 대법원의 판단입니다.
대통령기록물 관리에 관한 법률 제17조는 대통령지정기록물에 대해 보호기간을 설정할 수 있도록 하고, 그 기간 동안에는 다른 법률에 따른 자료제출 요구의 대상에서 제외된다고 규정합니다. 이 제도의 취지는 외교적·정치적으로 민감한 기록이 임기 직후 공개되어 정쟁의 소재가 되는 것을 막고, 대통령이 임기 중 민감한 사안에 관한 기록을 생산하는 것을 꺼리지 않도록 하는 데 있습니다. 대법원은 이러한 취지를 인정하면서, 보호기간 설정행위가 현저히 불합리하다고 볼 명백한 사정이 없는 한 법원이 그 결정을 최대한 존중하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밝혔습니다.
그러나 대법원은 동시에, 보호기간 설정행위가 법률에서 정한 절차와 요건을 갖춰야만 적법한 효력을 가진다는 점을 분명히 했습니다. 행정청이 대통령기록물법 제17조 제4항을 근거로 법원에 대한 자료 제출 자체를 거부할 수 있다고 해석하면, 보호기간 설정행위의 적법성에 관한 실질적인 재판이 불가능해지고 헌법 제27조 제1항이 보장하는 국민의 재판청구권이 침해될 수 있다는 것입니다. 또한 법원이 공공기관의 정보공개에 관한 법률 제20조 제2항에 따라 해당 기록물을 비공개로 열람·심사하는 방식을 취하면, 기록물이 외부에 공개되는 것이 아니므로 외교적·정치적 혼란이 발생할 우려도 없다고 보았습니다.
다만 대법원은 법원이 곧바로 기록물 제출을 명할 수 있는 것은 아니라고 선을 그었습니다. 법원은 먼저 행정청으로 하여금 간접사실—다툼이 되는 정보의 유형, 보호기간을 설정한 절차와 실질적 이유, 비공개 사유, 동종 정보에 대한 보호기간 설정 사례 등—을 제출하게 하여 적법성을 증명하도록 해야 합니다. 이러한 간접사실만으로 증명이 충분하지 않아 보호기간 설정행위의 적법성을 의심할 만한 상당한 이유가 있는 때에 비로소 비공개 열람·심사를 위한 기록물 제출을 명할 수 있습니다.
정보공개 거부처분에 불복하는 소송을 제기한 경우, 행정청이 대통령지정기록물이라는 이유만으로 법원의 심사 자체를 차단할 수는 없습니다. 보호기간 설정이 적법한 절차와 요건을 갖추었는지는 사법심사의 대상이 되며, 그 심사 과정에서 기록물 제출이 필요하다고 판단되면 행정청은 이를 거부할 수 없습니다. 정보공개 청구가 거부된 상황에서 해당 기록물이 대통령지정기록물로 지정된 경위나 요건 충족 여부에 의문이 있다면, 항고소송을 통해 그 적법성을 다툴 수 있다는 점을 이번 판결은 확인해 주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