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상시험 사기와 업무방해, 별개 범죄로 처벌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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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상시험 대행기관 운영자가 의뢰받은 임상시험을 제대로 진행하지 않으면서 비용을 계속 청구·수령한 행위에 대해, 대법원은 특정경제범죄법 위반(사기)죄와 위계에 의한 업무방해죄가 각각 별개의 범죄로 성립하며 실체적 경합 관계에 있다고 판단했습니다.
이 사건에서 피고인은 신약 개발을 위탁한 제약회사로부터 임상시험을 의뢰받았음에도 이를 약정대로 이행하지 않은 채 관련 비용을 반복적으로 청구하여 대금을 편취했습니다. 동시에 그 허위 진행 보고 등 위계적 행위로 인해 위탁회사의 신약 개발업무 자체가 방해받는 결과가 발생했습니다. 원심은 사기죄가 성립하는 이상 업무방해는 사기의 불가벌적 수반행위에 해당한다고 보아 업무방해 부분을 무죄로 판단했습니다.
그러나 대법원은 이 판단을 받아들이지 않았습니다. 두 죄는 **보호법익**부터 다릅니다. 특정경제범죄법 위반(사기)죄는 피해자의 재산을 보호하는 반면, 위계에 의한 업무방해죄는 업무의 정상적 수행이라는 사회적 법익을 보호합니다. 구성요건적 행위의 양태도 다르고, 범죄의 기수 시기도 서로 일치하지 않습니다. 나아가 어느 한 죄의 불법과 책임이 다른 죄의 불법과 책임을 완전히 포함하는 관계에 있지 않으므로, 사기죄가 성립한다고 해서 업무방해죄가 그 안에 흡수되어 버리는 불가벌적 수반행위로 볼 수 없다는 것입니다.
또한 두 죄가 상상적 경합 관계에 있는지도 문제가 되었습니다. 상상적 경합은 1개의 행위가 수개의 죄에 해당하는 경우인데, 대법원은 이 사건에서 사기 행위와 업무방해 행위를 법률상 하나의 행위로 평가하기 어렵다고 보았습니다. 구성요건을 달리하는 별개의 범죄로서 보호법익도 다른 이상, 두 죄는 상상적 경합이 아니라 **실체적 경합** 관계에 있다는 결론입니다.
임상시험이나 연구용역처럼 전문적·기술적 영역에서 이루어지는 위탁 계약의 경우, 수탁자가 이행을 제대로 하지 않으면서 대금을 수령하는 행위는 사기죄에 그치지 않고 위탁자의 핵심 업무를 방해한 별도의 범죄를 구성할 수 있습니다. 이번 판결은 사기죄의 성립이 업무방해죄의 성립을 자동으로 배제하지 않는다는 점을 분명히 한 것으로, 유사한 피해를 입은 위탁기관으로서는 재산 피해와 업무 방해 피해 모두를 별개의 법적 근거로 다툴 수 있다는 점을 염두에 둘 필요가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