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처분 결정 이후 재개된 현수막 게시 — 포괄일죄 성립 여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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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원이 현수막 게시를 금지하는 가처분 결정을 내린 이후 피고인이 현수막을 철거했다가 다시 게시한 경우, 앞선 범행과 뒤의 범행을 하나의 죄(포괄일죄)로 묶을 수 없다는 대법원 판단이 나왔습니다.

피고인은 2017년 12월부터 2018년 1월 사이에 특정 주식회사의 명예를 훼손하는 내용의 현수막을 그 회사 사옥 앞 전봇대 등에 불법 게시하였고, 이 행위로 명예훼손 및 옥외광고물법 위반으로 기소되어 유죄판결이 확정되었습니다(이하 '선행 사건'). 그런데 법원은 2018년 3월 30일 피해 회사 측의 신청을 일부 받아들여, 피고인에게 기존 현수막을 수거하고 사옥 경계로부터 200m 이내에서 '갑질', '허위자료 제출', '대리점 갈취' 등의 표현이 담긴 현수막을 게시하지 말 것을 명하는 가처분 결정을 하였습니다. 가처분 결정은 위반 시 1일당 50만 원을 지급하도록 하는 제재 조항도 포함하고 있었습니다. 피고인은 이 결정을 고지받은 2018년 4월 4일 이후인 같은 달 9일부터 2019년 6월까지, 선행 현수막을 철거한 뒤 내용을 다소 변경한 새 현수막을 다시 게시하였고, 이 행위가 다시 명예훼손 및 옥외광고물법 위반으로 기소되었습니다.

1심과 원심은 선행 사건의 범행과 이후 범행이 포괄일죄 관계에 있다고 보았습니다. 포괄일죄란 동일한 범의 아래 반복된 행위들을 하나의 죄로 평가하는 법리인데, 이 경우 선행 사건의 공소 제기 효력이 이후 범행에도 미쳐 별도로 처벌할 수 없게 됩니다. 원심은 이를 근거로 공소를 기각하였습니다.

그러나 대법원은 이 판단을 뒤집었습니다. 포괄일죄가 성립하려면 **범의의 단일성과 계속성**이 인정되어야 하는데, 이를 판단할 때는 범행의 방법과 태양, 동기, 각 범행 사이의 시간적 간격, 동일한 기회나 관계가 지속되는 가운데 후속 범행이 이루어졌는지, 즉 범의의 단절이나 갱신이 있었는지를 세밀하게 살펴야 한다고 밝혔습니다. 이 사건에서는 가처분 결정으로 피고인이 기존 현수막을 실제로 철거함으로써 범행이 일시 중단되었고, 이후 게시된 현수막은 가처분에 따른 제재를 피하기 위해 표현을 달리하여 새로 제작된 것이었습니다. 대법원은 이러한 사정을 종합하여, 선행 사건과 이후 범행 사이에는 **범의의 갱신**이 있었다고 판단하였습니다.

이 판결은 반복적인 현수막 게시나 유사한 방식의 명예훼손 행위가 문제 되는 상황에서 중요한 기준을 제시합니다. 가처분 결정이나 법원의 금지 명령이 개입된 이후 재개된 행위는, 설령 내용이나 방식이 앞선 행위와 유사하더라도 별개의 범행으로 평가될 수 있습니다. 반대로 피해자 입장에서는, 가처분 결정 이후에도 유사한 행위가 반복된다면 이를 독립된 범행으로 처벌받게 할 수 있는 근거가 생긴다는 점을 염두에 둘 필요가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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