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국 회사 간 분쟁, 한국 법원에서 다툴 수 있는가

---

파나마 법인과 중국 법인 사이의 손해배상 분쟁에서, 대법원은 한국 법원의 국제재판관할권을 인정했습니다. 두 당사자 모두 외국 법인이고 분쟁의 발단이 된 가압류가 인도에서 이루어졌음에도, 한국과의 실질적 관련성이 충분하다고 본 것입니다.

사건의 경위는 다음과 같습니다. 중국 법인(乙)이 인도 법원에 파나마 법인(甲) 소유 선박에 대한 가압류를 신청하여 인용받았다가 이후 취소되었고, 甲은 이 가압류가 위법하다며 손해배상을 청구하기로 했습니다. 甲은 부산항에 입항 중이던 乙 소유 선박을 한국 법원에서 가압류하는 데 성공했고, 乙이 해방공탁을 통해 집행을 취소한 뒤 甲은 한국과 인도 양쪽 법원에 본안 소송을 제기했습니다. 이 과정에서 한국 법원이 이 사건을 심리할 관할권을 갖는지가 핵심 쟁점이 되었습니다.

대법원은 구 국제사법 제2조 제1항이 정한 **실질적 관련성** 기준에 따라 관할권을 판단했습니다. 이 기준은 당사자의 공평·편의·예측가능성 같은 개인적 이익과 함께, 재판의 적정·신속·효율 및 판결의 실효성 같은 법원과 국가의 이익을 함께 고려하도록 요구합니다. 나아가 구 국제사법 제2조 제2항은 민사소송법의 관할 규정을 판단 기준으로 참작하되, 국제재판관할의 특수성을 고려하여 수정 적용할 수 있다고 정합니다. 대법원은 민사소송법 제11조가 피고의 재산 소재지에 특별재판적을 인정하는 것과 같은 맥락에서, 乙의 해방공탁금이 현재 한국 법원에 예치되어 있고 甲의 청구액에 상당하며 즉시 집행이 가능하다는 점을 중요하게 고려했습니다.

또한 乙 소유 선박은 선체용선자가 국내 현지법인을 통해 영업에 활용하면서 가압류 전부터 소 제기 무렵까지 부산항과 중국 사이를 정기적으로 운항해 왔고, 이 선박이 乙이 보유한 유일한 선박이었다는 사정도 관할 인정의 근거가 되었습니다. 한편 인도 소송에서 甲이 전부 패소한 판결이 존재하더라도, 이는 한국 법원의 관할권 유무에 직접 영향을 미치지 않으며 민사소송법 제217조의 외국판결 승인 요건을 충족하는지에 따라 그 효력이 별도로 판단될 문제라고 보았습니다. 대법원은 국제재판관할권은 배타적인 것이 아니라 복수의 국가에 병존할 수 있고, 다른 나라 법원이 더 편리하다는 사정만으로 한국 법원의 관할을 쉽게 부정해서는 안 된다는 점도 분명히 했습니다.

이 판결은 분쟁 당사자가 모두 외국 법인이더라도 피고의 재산이 한국에 있거나 판결의 실효적 집행이 한국에서 가능한 경우라면 한국 법원의 관할권이 인정될 수 있음을 보여줍니다. 특히 해방공탁금처럼 소송 과정에서 형성된 재산이 국내에 예치되어 있는 상황은 실질적 관련성 판단에서 유력한 근거가 됩니다. 외국 법인과의 분쟁에서 어느 나라 법원에 소를 제기할지 검토할 때에는 피고 재산의 소재지, 집행 가능성, 기존 외국 판결의 승인 여부 등을 함께 살펴볼 필요가 있습니다.

← 법률노트로 돌아가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