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18 피해자 가족의 위자료 청구권과 소멸시효 기산점

---

헌법재판소가 2021년 5월 구 광주민주화보상법의 '화해간주조항'에 대해 위헌결정을 내린 이후, 5·18민주화운동 관련자의 가족들이 국가를 상대로 고유의 위자료를 청구할 수 있는지, 그리고 그 청구권이 이미 소멸시효로 소멸하였는지가 다투어졌습니다. 대법원은 위헌결정일인 2021년 5월 27일까지 관련자 가족들에게는 권리행사를 가로막는 장애사유가 존재하였다고 판단하여, 그로부터 3년이 경과하기 전에 소를 제기한 이상 소멸시효는 완성되지 않았다고 결론 내렸습니다.

이 사건에서 핵심 쟁점은 불법행위로 인한 손해배상청구권의 **단기소멸시효** 기산점이었습니다. 민법 제766조 제1항은 기산점을 '손해 및 가해자를 안 날'로 정하고 있고, 민법 제166조 제1항은 소멸시효가 '권리를 행사할 수 있는 때'부터 진행한다고 규정합니다. 대법원 다수의견은 이 두 조항을 함께 읽어, 피해자가 손해와 가해자를 알았더라도 **권리행사의 객관적·합리적 기대가능성**이 없었다면 시효는 진행하지 않는다는 기준을 제시하였습니다. 종래 판례가 '법률상 장애'와 '사실상 장애'를 구분하여 전자에 해당하는 경우에만 시효 진행을 막아 왔다면, 이번 판결은 그 구분이 언제나 절대적인 기준이 될 수는 없다고 명확히 하였습니다.

구체적인 사실관계를 보면, 5·18 관련자의 가족들은 보상심의위원회의 보상금 지급결정 당시 이미 손해와 가해자를 알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당시 구 광주민주화보상법의 화해간주조항은 보상금을 지급받으면 '광주민주화운동과 관련하여 입은 피해'에 대한 재판상 화해가 성립한 것으로 간주하였고, 그 범위에 정신적 손해가 포함되는지 여부는 위헌결정이 내려지기 전까지 법적으로 불명확한 상태였습니다. 대법원은 이러한 불명확성이 피해자 측의 법률 부지나 귀책사유에서 비롯된 것이 아니라, 국가가 보상 관련 법령을 제정·집행하는 과정에서 보상 대상과 범위를 협소하게 규정하고 위헌 소지가 있는 서식으로 보상 절차를 신속히 마무리하려 한 데서 초래된 것이라고 보았습니다. 가해자인 국가가 스스로 법률관계를 불명확하게 만들어 놓고, 사후에 그 불명확한 상황에서도 권리행사가 가능하였다고 주장하는 것은 받아들이기 어렵다는 취지입니다.

이번 판결은 과거사 사건에서 국가배상청구권의 소멸시효를 다룰 때 고려해야 할 요소들을 구체화하였다는 점에서 의미가 있습니다. 공무원들이 조직적으로 관여한 중대한 인권침해 사건에서, 이후 진실규명의 어려움이나 억압적 사회 분위기 등으로 권리행사가 사실상 곤란하였던 사정, 그리고 국가배상청구권이 국가의 기본권 보장 의무 위반에 대한 사후 구제 수단이라는 특성이 모두 시효 기산점 판단에 반영되어야 한다고 대법원은 밝혔습니다. 5·18 관련자의 가족처럼 보상 절차에 참여하였음에도 고유의 정신적 손해에 대한 배상 청구 가능성을 인식하기 어려웠던 상황에 처해 있다면, 헌법재판소의 위헌결정과 같이 권리행사의 장애가 법적으로 제거된 시점을 기준으로 소멸시효 진행 여부를 따져볼 필요가 있습니다.

← 법률노트로 돌아가기